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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호미곶

호미곶은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 한반도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이곳을 일곱번이나 답사 측정한 뒤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임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또한 16세기 조선 명종때 풍수지리학자인 격암 남사고는 이곳을 우리나라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기술하면서 천하 제일의 명당이라 하였고, 육당 최남선은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한반도를 묘사하면서 일출제일의 이곳을 조선십경의 하나로 꼽았다.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며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고 하여 호랑이 꼬리는 국운상승과 국태민안의 상징이겠기에, 여기 호미곶에 일제는 쇠말뚝을 박아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으려 하였으며 한반도를 연약한 토끼에 비유해 이곳을 토끼꼬리로 비하해 부르기도 하였다.
한국천문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이곳 호미곶의 일출시각은 아침 7시 32분('99. 1. 1일 기준)으로 명실공히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이곳에서 1999. 12. 31 ~ 2000. 1. 1에 걸쳐 새천년 국가행사로 한민 족 해맞이 축전이 개최되었다.
또한 호미곶 주변에는 1908년 건립된 국내 최대 규모의 호미곶 등대와 국내 유일의 등대박물관과 암울했던 일제치하 에서 독립운동에 온몸을 던진 이육사의 곧은 절개와 애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청포도 시비(詩碑) 및 동해의 청정 해수를 이용한 대보 해수탕이 있다

소재지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해맞이로 136

연락처

054-270-6694

교통정보

  • 1.버스이용 :
  • 시내에서 200번 좌석버스 이용시 구룡포 종점 하차 후 대보행 버스 이용
    (1일 6회)
  • 2.자동차이용 :
  • 시내에서 구룡포, 감포 방면 31번 국도 이용하여 구룡포읍내 진입 후 925번 지방도 이용하여 대보방면으로 20분정도 가다보면 우측 해안에 위치

 
국립등대박물관

국립등대박물관

등대의 역사적·문화적 가치와 해양안전에 기여하는 역할과 해양사상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국내 유일의 국립등대전문박물관으로 동해안의 푸른 바다와 일출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국립등대박물관은 산업기술의 발달과 시대적 변화로 사라져가는 항로표지의 시설과 장비를 영구히 보존 전시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관람객들이 직접 보고 듣고 만져보면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체험 학습공간으로서 항로 표지와 해양수산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꿈을 키워주는 공간이다.

소재지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해맞이로 150번길 20

연락처

054-270-6694

교통정보

  • 1.버스이용 :
  • 시내에서 200번 좌석버스 이용 구룡포종점 하차 후 대보행 시내버스 이용 호미곶하차 (1일16회)
  • 2.자동차이용 :
  • 시내에서 구룡포, 감포방면 31번국도 이용, 구룡포읍내 진입 후 925번 지방도이용.차량으로 20분정도 가다보면 호미곶해맞이광장 옆에 위치

 
구룡포일본가옥거리

구룡포일본가옥거리

구룡포에 가면 100여년 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일본 가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의 거류지였던 구룡포 읍내 장안동 골목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직도 일본풍이 물씬 풍겨난다. 실제로 수년 전 모 방송국의 인기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일본거리 촬영때 이곳 구룡포 읍내 장안동 골목이 촬영 세트로 이용됐었다.
이 골목에 들어서면 시간을 되돌려 놓은 듯 1900년대 초반 한국 속에 자리잡은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엿보는 기분이 든다. 이층 목조가옥 창문이 열리면서 기모노 차림의 여인이 "곤니치와!" 하고 인사를 건넬 것 같은 느낌이다. 자동차가 겨우 지날 만큼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빽빽이 들어서 가옥은 낡고 빈 곳이 많았지만 느낌은 그대로 전해진다. 골목 모퉁이에 몇 년 전 베어냈다는 나무전봇대 밑동이 고스란히 보인다.
가옥 뒷산은 일본인들이 손수 만든 공원이 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공원이 나오고 그 안에 선원들의 무사고를 빌던 용왕당도 보인다. 돌계단 양쪽으로 비석을 세워놓았는데 비석마다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영일군수 김우복, 영일교육감 임종락, 제일제당 구룡포통조림공장 하사룡, 이판길...단기4276년(1943) 7월에 세웠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러나 이 계단과 비석에 세워진 것을 일본인에 의한 것으로 1920년대쯤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집단거주지를 만든 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뒷산에 공원을 꾸미고 비석에 이름을 새겨놓았었는데, 일본인들이 떠나자 시멘트를 발라 기록을 모두 덮어버린 뒤 비석을 거꾸로 돌려 그곳에 구룡포 유공자들의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돌계단에 걸터 앉아 일본인 골목을 바라보면 1920~30년대 한국속의 일본을 엿볼 수 있다. 사라진 흔적들이지마 오래도록 역사에 남겨야 할 현장임에 틀림없다.

소재지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

연락처

054-270-2271

교통정보

  • 1.버스이용 :
  • 시내에서 구룡포행 200번 좌석버스 이용, 구룡포 하차
  • 2.자동차이용 :
  • 경부고속도로→경주→경주→포항방면7번국도→포항시내→구룡포방면 31번국도→ 19km→구룡포읍내

 
영일 장기읍성

영일 장기읍성(迎日 長機邑城)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에 위치한 장기읍성(長鬐邑城)은 이 고장의 진산(鎭山)인 동악산(東岳山)에서 동쪽으로 뻗은 등성이에 있으며, 그 구릉 아래쪽으로는 장기천이 동해로 흘러 현내 들판을 형성하고 있다. 일제(日帝)의 잔혹함은 이 읍성에도 밀려 들어와서 성안의 모든 관아(官衙) 등 시설이 파괴되고 단지 향교만이 이 고장 주민들에 의해 복원 유지되고 있고, 성벽은 허물어진 곳이 대부분이었으나 복원 중에 있다. 동ㆍ서ㆍ북문의 터와 수구(水口) 1개소, 12개소의 치성(雉城), 4개소의 우물, 3개소의 못 등이 옛 성의 모습을 그대로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잘 보존되어 있다.
1. 단종(端宗) 2년(145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성(城)의 둘레가 174보(步)이고 성안에 우물이 두 곳이 있다.
2. 예종(睿宗) 1년(1469년)에 지은 경상도속선지리지(慶尙道續選地理志)에는 세종 21년(1439년)에 돌로 쌓고 둘레가 3,664척이고 높이는 12척이며 샘(泉)이 두 곳이며 못(池)이 두 곳으로 겨울과 여름에도 마르지 않았고, 군창(軍倉)도 있다.
3. 중종(中宗) 25년(1530년)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석축(石築)을 하고 둘레가 2,980척이고 높 이는 10척으로 우물이 네 곳이며 못이 두 곳이다.
4. 구 읍성이 현의 남쪽 2리에 있으며 돌로 쌓아 그 둘레가 468척이고 높이는 12척이고 샘이 두 곳 있다. 이상의 네가지 기록에서 성의 규모를 보면 모두 다르게 되어 있다. 이것은 같은 위치의 성(城)을 여러 대에 걸쳐 중축(重築)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성(城)이 있었던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축성기록 4항의 구 읍성(旧 邑城)은 뚜렷이 위치가 다르게 나타나 있는데 지금은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움이 남지만 분명히 고려시대(高麗時代) 이전의 고성(古城)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편 이곳은 벽지로 인정되어 귀양지로도 되었으니 유교의 대가인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과 실학파(實學派)의 태두(泰斗)인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이 귀양살이 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 고장은 송시열을 기리는 죽림서원(竹林書院)이 세워져 글을 읽는 마을이 되었으며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특성이 있는 곳이 아니고 오로지 국방의 일익을 담당한 군사기지로 그 역할을 다하였던 고장이라 할 수 있다.

소재지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127-2(면사무소 뒷길)

지정분류

국가지정문화재 > 사적

지정번호

제386호

지정일시

1994.03.17

시대

조선시대

크기/수량/규모

지정면적 124,936㎡, 성벽높이

종류/분류

유물 / 기타종교공예

 
모포즐

모포즐

조선 태종 4년(1404년)에 제작된 모포줄은 당시 장기현감이 꿈에 뇌성산(磊城山)에서 장군이 용마(龍馬)를 타고 내려와 장군수(將軍水)를 마시고 난 후 “만인(萬人)이 이 곳을 밟아야 좋다.”고 말한 후 사라졌다고 한다.
이 날이 2월 16일이었는데, 이에 현감은 「줄」을 제작하게 한 후 격년제로 8월 16일에 남ㆍ북으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였는데, 북으로는 구룡포ㆍ대보, 남으로는 양남ㆍ양북주민들로 구성되었다.
이 줄은 모포리(牟浦里)의 수호신으로 신성시하고 있으며, 줄다리기 날이 돌아오면 아침 일찍부터 마을사람들은 줄이 보관되어 있는 당집에 모여 제사를 지낸다.
제사는 매년 정월 초순에 드리는 당제와 줄을 꺼낼 때 드리는 줄제가 있다. 제사를 모시는 제주(祭主)와 음식을 장만하는 화주(化主)를 마을의 대동모임에서 결정하고, 제주와 화주가 제일(祭日)을 택일하면 마을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근신한다.
제사일 3~7일 전 제주와 화주는 바닷물에 목욕재계하고 제사를 준비한다. 구 영일군의 일월문화제 행사시에 강남과 강북으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였으며 포항시와 영일군이 통합된 뒤 제1회 영일만 축제 행사에서 모포줄다리기가 다시 재현되었다.
칡넝쿨과 구피껍질로 제작된 이 줄은 한쌍으로 된 국내 최고(最古) 오래된 줄이다.

소재지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리 17-4

지정분류

국가지정문화재 > 중요민속자료

지정번호

제187호

지정일시

1994.04.17

시대

조선시대

크기/수량/규모

길이 58m, 둘레 150cm

종류/분류

유물 / 기타종교공예

 
장기척화비

장기척화비(長機斥和碑)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치른 뒤 흥선대원군이 쇄국의 결의를 굳히고 온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1871년 4월을 기해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요소에 세운 척화비 중 하나이다.
사암(砂巖)으로 된 척화비는 장방형 판석(長方形 板石)으로 6면을 마연(磨硏)한 다음 앞면에 각자(刻字)하였다.
이 대원군척화비(大院君斥和碑)의 원래 위치는 장기읍성 내에 있었던 것을 1951년 4월초에 장기(당시 지행면)지서 입구에서 찾아 현재 장기면사무소 정문좌측 도로변에 세워두었다가 1990.12.1 장기면사무소 정원에 이설(移設)하여 보호책을 설치하였다.
척화비의 비문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吾萬年子孫丙寅作 辛未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계오만년자손병인작 신미립)」「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며 화해할 수 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적혀 있다. 이 비는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치룬 후 전국의 요충지에 세웠는데 임오군란 때 모두 철수되었다.
척화비의 높이는 120cm, 폭 45cm, 두께 21cm로 경북도내에 구미, 청도 척확비와 함께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소재지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107(면사무소 뒤)

지정분류

국가지정문화재 >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제224호

지정일시

1990.08.07

시대

조선시대

크기/수량/규모

높이120, 폭45, 두께21(cm)

종류/분류

석재

 
장기향교

장기향교(長機響校)

장기향교는 조선 태조(太祖) 7년(1398년)에 현의 남쪽 2리에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 33년(1600년)에 중건하고, 정조 9년(1785년) 지방의 교학을 부흥하기 위해 현감 황익진(黃翼振 : 1784~1785) 때 마현행단(馬峴杏檀 구석곡 : 현 장기초등학교 동편)에 이건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문경(徐文慶)ㆍ서극인(徐克仁)ㆍ이대임 (李大任)ㆍ이눌(李訥) 등이 향교에 봉안해 오던 위패를 용암석굴(龍岩石窟)에 권안(權安)시키고 의병을 일으켰기 때문에 건물은 소실되었으나 위패만은 무사할 수 있었고, 덕계(德溪) 임재화(林再華)는 향교를 이건할 때 대대로 살던 자기 집터를 희사하여 향교재건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 후 1931년에 군수 김영수(金永銖)가 향사(鄕士)들과 함께 읍성(邑城)내에 있던 구 객관(客館)을 수리하여 명륜당 (明倫堂)을 만들고 대성전(大成殿)을 새로 건립하여 위패를 옮겨 안치하였다. 장기향교는 소평위며, 인근 55문중이 매년 춘추 2회(2월, 8월 상정일) 향제를 지내다가, 최근부터는 8월 상정일에만 지내고 있다.
현재 향교에는 대성전ㆍ명륜당ㆍ신삼문ㆍ동재ㆍ장경각ㆍ대문 등의 건물이 보존되고 있다. 향교 앞의 하마비(下馬碑)는 근래 새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소재지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성길 92

지정분류

국가지정문화재 >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제327호

지정일시

1997.09.29

보유자

재단법인 경북향교재단

 
광남서원

광남서원(廣南書院)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성동리에 있는 서원이다.
1791년(정조 15년)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황보 인(皇甫 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831년(순조 31년)에 '광남'이라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년) 훼철되었다가 그 뒤 1900년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頭)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2천평 등이 있다.

소재지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정동길 77번지 11-6

지정분류

향토유적 > 비지정

시대

조선시대

 
나곡서원

나곡서원(螺谷書院)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병포리에 있는 서원이다. 중종 때 기묘사화에 연루된 좌의정 안당의 후손인 안간(安侃)이 피신을 와서 장기현 오야리에 거주하다 죽은 후 묘소를 오야리 야산에 두었으나, 후손이 실묘하여 구룡포읍 병포리 정자산에 단소를 선단하였다. 매년 음력 10월 10일 시제를 모시고 오다가, 1936년 제당을 착공하여, 1938년 6월 하순경에 완공하여 시제를 모셨다. 그 후 1977년 나곡서원으로 성균관 인가를 얻어 매년 음력 4월 초정(初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소재지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병포리 산120-1번지

지정분류

향토유적 > 비지정

시대

조선시대

 
구룡포해수욕장

구룡포해수욕장

우리나라 지도에서 호랑이 꼬리부근, 호수같은 영일만을 업고 있는 구룡포해수욕장은 포항에서 24km, 구룡포읍에서 1.5km가량 떨어져 있다. 반달형의 백사장은 길이 400m, 폭 50m, 넓이 6,000평으로서 하루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해안경관이 수려하고 영일만 해돋이와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잘 구비되어 있다.

소재지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리 426번길 6

연락처

054-276-2504

개장

7월~8월

주차시설

1개소 660평

편의시설

샤워장, 탈의장, 공중화장실, 식수대

교통정보

7월~8월

  • 1.버스이용 :
  • 시내에서 좌석버스 200번 이용. 구룡포 종점 하차 후 도보로 10분거리 대보행 버스 이용 1일(8회) 5분 소요
  • 2.자동차이용 :
  • 포항시 형산교에서 31번국도 이용. 구룡포·감포방면 20km지점인 병포리에서 군도이용,구룡포읍내를 지나 4km지점.
 

해안드라이브코스

해안드라이브 추천코스

해안드라이브코스 안내도

 
하선대

하선대

동해면 입암리와 마산리 경계지점인 황옥포(黃玉浦), 속칭 한미끼에 있는 작은 바위에 선녀가 내려와서 놀었다 하여 하선대 또는 하잇돌이라고도 한다. 옛날 동해의 용왕이 매년 칠석날 선녀들을 이곳에 초청하여 춤과 노래를 즐기곤 하였는데 용왕은 그 선녀들 중에서 얼굴이 빼어나고 마음씨 착한 한 선녀에게 마음이 끌리어 왕비로 삼고 싶었으나 옥황상제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용왕은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다를 고요하게 하고 태풍을 없애는 등 인간을 위하는 일을 하자 황제가 감복하여 선녀와의 혼인을 허락하게 되었다고 하며 용왕과 선녀는 자주 이곳으로 내려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 참고문헌 : 영일군사 ]

 
장군바위

장군바위

이 바위는 장군이 아이를 업고 영일만으로 걸어가는 형상이라하여 장군바위라 부른다.
이 마을 발산2리(여서리) 해안가에는 깨끗한 물과 굵은 자갈밭이 형성되어 있으며 세계 희귀수복이자 천연기념물 제371호 모감주나무의 최대군락지가 있다.

 
구룡소

구룡소

대보면 대동배에는 동해안의 영일마넹서 매우 경치가 좋은 곳이다. 조용히 구비 돌아 이루어진 아늑한 포구에는 노적암 서쪽 300m 지점에 동을배봉이 우뚝하게 선 해안 절벽에 아홉마리의 용이살다 승천하였다는 구룡소가 있다. 이 구룡소는 높이가 40~50m정도이며 둘레가 100m의 움푹 패인, 자연만이 빚어낼 수 있는 기암절벽이다.
용이 살았다는 소에는 맑은 바닷물이 드나들고, 바닥의 평평한 곳에 깔린 여러 형상의 바위에는 맑은 물이 출렁이고 있어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할 때 뚫어진 9개의 굴이 있으며 그 중에는 5리 가량의 깊은 굴도 있다. 또한 그 굴속에는 유명한 도승들이 수도를 하였으며, 파도가 칠때는 용이 승천한 굴의 입구로 흰 거품과 같은 바닷물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마치 용의 입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듯 하며 물을 뿜어낼 때의 우렁찬 울림소리는 천지가 진동하여 지금도 이 구룡소(九龍沼)를 아주 신령한 곳으로 믿고 있다.
[ 참고문헌 :영일군사 ]

 
독수리바위

독수리바위

이 지역은 풍파가 심하면 고기(청어)가 밀려나오는 경우가 허다하여 까꾸리(갈고리의 방언)로 끌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지명으로 까꾸리개라 부른다.
독수리바위는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조각된 바위의 형상이 독수리의 부리를 닮았다하여 주민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호미곶의 땅끝인 이곳에서 서쪽으로 지는 석양의 노을은 대흥산 너머에서 비추는 낙조로 층층의 산과 시가지, 특히 이불의 포스코 굴뚝을 선명하게 내게 하는데 그 화면이 동양화를 연상케하는 절경으로 언론, 방송사 등 많은 사진작가들이 작품 사진을 찍기도 한다

 
모감주나무

모감주나무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71호 모감주나무(92.12.23 일명:염주나무)는 무환자과에 속하며 여름철에 황금비를 뿌리는 세계적인 희귀 수종으로 우리 지역 대동배1리와 발산리 주변 해안 임지에서 서북방향으로 향하여 자생하고 있으며 충남 안면도와 강원도 일부 해변에 몇그루씩 자생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모꼴의 초롱같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루비빛으로 물드는 단풍이 화려하며 큰 나무의 높이는 15m, 수목 4m, 둘레 1.2m가 되고, 수령이 80~100년 정도되는 것도 있으며 생육지는 대동배1리 마을 전체에 걸쳐 있으며 팽나무, 느티나무, 귀똥나무, 떡갈나무 등 활엽목과 함께 자생하고 있는 활엽교목의 잎은 달걀모양이다.